현대 사회에서 ‘돈’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 심지어 행복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성공 = 부"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며 자라왔고, 매체와 문화는 부자가 되는 법, 돈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끊임없이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부의 불평등, 탐욕, 빚과 파산, 물질로 인한 갈등도 늘어만 간다. 이처럼 돈은 필수이지만, 복잡하고 위험한 주제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돈에 대해, 그리고 진정한 부에 대해 다시 묻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단지 경제학적·사회학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돈과 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생각보다 자주 돈을 언급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돈, 소유, 청지기, 보상과 관련되어 있을 만큼, 재물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성경은 돈을 죄악시하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부 축적을 칭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돈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자,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를 드러내는 도구로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돈과 부의 본질적인 의미를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단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돈은 축복이 될 수도, 우상이 될 수도 있다.
성경 속 돈은 ‘악’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성경은 돈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돈은 만악의 근원이다”라고 오해하지만, 실제 디모데전서 6장 10절의 원문은 이렇게 말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여기서 핵심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 즉 돈을 최종 목적이나 우상으로 삼는 태도이다. 성경은 재물을 축복의 수단으로 허락하신다. 아브라함, 욥, 다윗, 솔로몬 등 많은 인물들이 큰 부를 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들이 그 부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가가 하나님의 관심사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재물의 위력이 신과 맞먹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돈은 중립적인 도구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고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반복해서 돈을 어떻게 대할지를 경계하고 있다.
즉, 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부자가 문제가 아니라, 부를 섬기기 시작할 때 신앙이 흔들린다. 그래서 성경은 ‘재물의 사용’보다는 먼저 ‘마음의 중심’을 점검한다. 돈이 많아도 욕심 없이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적어도 돈에 집착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성경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돈을 대하는 내 태도’라고 말한다.
성경 속 진정한 부는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적 사용’에 있다
성경은 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뒤흔든다. 일반적으로 부는 얼마나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가로 판단되지만, 성경은 오히려 그 소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누구를 위해 쓰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이를 잘 보여준다. 주인은 세 종에게 각각 다른 금액을 맡기고 떠났고, 돌아와서는 그 금액의 절대량이 아니라, 신실하게 관리했는지를 평가한다.
이 비유에서 돈은 단지 자산이 아니라, 주인이 맡긴 사명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소유자’로, 인간을 ‘청지기’로 설정한다. 즉,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영할 책임이 있는 관리자라는 것이다. 이런 청지기적 관점은 물질을 쌓는 데 집중하는 현대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는 주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사용한 청지기가 등장한다. 그는 해고 위기에 처하자, 채무자들의 빚을 줄여주는 ‘현명한 행동’을 했고, 주인은 오히려 그것을 칭찬한다. 이는 단지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부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부를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어떻게 흘려보냈는가로 측정된다.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태복음 6:21)고 하셨다. 다시 말해 재물의 흐름은 마음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성경적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하는 자다.
성경 속 탐욕은 우상이며, 만족이 곧 경건이다
성경은 돈보다 탐욕을 더 경계한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까지 말한다. 왜냐하면 탐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궁극적 가치로 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탐욕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많이, 더 좋게, 더 높게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마음은 늘 허기지게 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다. 이 부자는 풍년을 맞아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재물을 쌓아두며 “이제는 평안히 쉬자”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날 밤 그의 생명을 거두시며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신다. 재물을 쌓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혼을 위한 준비에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디모데전서 6장 6~8절은 이렇게 말한다.
“경건은 큰 이익이 되나니,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족하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돈을 소유하되, 그것에 소유당하지 말라. 많은 사람이 재물 자체보다 ‘비교’와 ‘욕망’ 때문에 불행해진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 자족할 때, 가장 큰 부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부는 내 계좌의 숫자보다, 내 마음의 평안이다. 탐욕은 채워도 목마르지만, 자족은 없어도 넉넉하다. 성경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으로 충분한 삶을 배우는 것임을 강조한다.
성경 속 부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위한 도구’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부의 본질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라는 데 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은 말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오히려 수고하여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하라. 이는 어려운 자에게 나눠 줄 것이 있음이라.”
이 구절은 단순히 “일하라”는 메시지를 넘어, 일을 통해 벌어진 재물은 반드시 누군가를 돕기 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성경적 경제 윤리를 담고 있다. 이는 매우 능동적인 나눔의 태도다. 성경은 자선을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사명으로 본다.
고린도후서 9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도록 요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셔서... 모든 착한 일에 넉넉하게 하시려 함이라.”
즉, 하나님이 주시는 부는 다시 흘려보내기 위한 흐름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는 정체된 축적이 아니라, 흘러가는 순환 구조 안에서만 건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사도행전 20:35).
오늘날 우리는 부를 쌓기 위한 전략에는 익숙하지만, 그 부를 흘려보낼 목적에는 종종 무감각하다. 성경은 물질을 ‘사명의 도구’로 재해석한다. 내가 가진 것을 통해 누군가를 살리고, 복음을 나누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일 때, 그 돈은 더 이상 우상이 아닌 축복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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