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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 성경과 생태신학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붕괴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정치, 경제, 과학을 넘어서 인간 존재와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을 다시 묻게 만든다. 그 질문은 “인간은 자연과 어떤 관계인가?”, “지구는 소모할 자원인가,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인가?”이다. 이때 성경 속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창조 이야기는 그 해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창세기는 인간과 자연이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지고, 함께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묶여 있는 존재임을 분명히 선언한다. 이 글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 속에 담긴 생태적 관점과, 그것이 오늘날 생태신학(ecotheology)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성경이 단지 영적인 삶만이 아니라, 자연을 돌보는 책임 윤리의 뿌리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글이 될 것이다.

 

창세기 성경과 생태
창세기 성경과 생태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 속 자연에 부여된 본래적 가치

성경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날마다 창조를 마치실 때마다 반복적으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단지 인간이 보기 좋은 외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눈에 만족스럽고, 선한 질서로 창조되었음을 선언하는 표현이다.
이 선언은 자연이 인간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와 존재 이유를 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준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에도 이미 땅, 물, 식물, 동물들을 먼저 창조하셨으며, 그들에게 각각 서식 공간과 번성의 권리를 부여하셨다.

이러한 본문은 오늘날 자연을 단지 개발하고 소유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신 창조의 일부로 바라보게 만든다. 생태신학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즉, 생태계 전체가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이기에 인간은 그것을 돌보는 자로 부름받았다는 책임 윤리를 가진다. 자연은 단지 인간 문명의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속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성경 속 인간의 역할: 정복이 아니라 돌봄과 관리

성경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신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오해되어 왔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서 ‘다스리다’(radah)와 ‘정복하다’(kabash)는 폭력적 지배가 아니라 ‘보살피며 책임지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창세기 2장 15절에서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니라”라는 구절과 함께 해석해야 한다. 여기서 ‘경작하다’(abad)는 ‘섬기다’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으며, ‘지키다’(shamar)는 보호자, 관리자의 역할이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대리하여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할 청지기(steward)로 세우신 것이다. 생태신학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인간을 위한 ‘소비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는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인간을 위치시키셨다. 현대의 생태위기는 바로 이 창조 질서의 책임을 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주인처럼 행동할 때, 자연은 결국 저항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그리고 환경 재앙이다.

 

성경 속 타락 이후의 자연: 죄는 인간만이 아니라 창조계를 무너뜨린다

성경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함께 파괴되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의 죄로 인해 땅 자체가 고통을 겪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장면이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 흐름은 유지된다. 로마서 8장 22절에서 바울은 “피조물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죄가 영적 영역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 파급되는 본질적 결과를 낳았다는 인식이다. 생태신학은 이러한 본문들을 근거로, 오늘날의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단순한 과학적 실패가 아니라 ‘신학적 타락의 징후’로 본다.

창조 질서의 붕괴는 인간만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기후 안정성, 물과 토양의 생명력까지 무너뜨린다. 따라서 회복도 단지 인간의 회개에 머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향한 돌봄과 정의의 실현으로 이어져야 한다. 인간의 죄는 땅을 병들게 만들었고, 회복은 다시 자연을 회복시키는 과정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성경 속 회복의 비전: 새 창조를 향한 신앙인의 생태적 책임

성경 창세기의 마지막 메시지는 파괴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맺으며 “다시는 물로 온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이후에도 하나님의 창조 회복은 계속 강조된다. 이사야 11장에서는 평화로운 창조 세계의 회복,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는 세상이 언급되며,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한다.
즉, 성경은 창조 → 타락 → 구속 → 새 창조라는 흐름 안에서 자연도 하나님의 구속과 회복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생태신학은 이 흐름에 기반해 신앙인이 단지 교회 안의 경건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데 동참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보호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주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실천이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줄이고, 탄소를 절감하고, 동식물을 존중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 대한 응답이며,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책임 있게 전수하려는 신앙인의 태도다.

결국 창세기는 인간에게 “다스림”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의로운 방식으로 모든 피조물과 함께 살아가라고 명령한 창조 계약서이다. 이제 우리는 그 계약의 회복을 위한 실천자로 서야 한다. 생태신학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생명과 자연을 어떻게 돌려드릴 것인가에 대한 영적 응답이다.